I AM TINTIN

1.

“남자들은 거울을 보며 ‘나 정도면 나쁘지 않지’라고 생각한다”는 말을 들을 때마다 난 늘 갸우뚱한다. 살면서 내 몸에 대해 안도해 본 적이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온 몸에 넘치는 힘을 주체하지 못해 연일 뛰어다니던 또래 친구들과 달리 나는 늘 어색하게 걷고 느리게 뛰는 과체중의 책벌레였고, 자연스레 무리가 즐기는 유희에서 제외되곤 했다. 물론 처음부터 내 몸을 수치스레 여긴 건 아니다. 하지만 무리에서 도태되면서, 내 둔한 몸동작을 조롱하는 또래들의 눈빛을 보면서, 아무렇지 않은 말투로 살은 언제 뺄 거냐고 채근하는 친척 형제들의 말을 들으면서 난 자연스레 수치를 배웠다. 이게 창피해야 할 일인가 보다. 내 몸은 남들 보기에 밉고 부자연스러운 몸인가 보다.

그리고, 어머니가 있었다. 아버지와 달리 키가 작은 어머니는, 내가 당신을 닮아 키가 작단 이야기를 듣진 않을지 늘 노심초사했다. 이해가 안 가는 건 아니었다. 남편을 닮아 키가 큰 첫째 딸과 달리, 둘째 딸은 날 때부터 선천적인 장애를 가지고 태어나 육체적 성장이 더뎠으니까. 그 시절엔 아이에게 장애가 있으면 은연 중에 아이 엄마에게 책임을 묻는 사회적 분위기가 팽배했고, 어머니도 그런 눈초리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으리라. 저거 봐, 첫째는 지 아버지 닮아 키가 큰데, 둘째는 아파서 태어났잖아. 누구 닮아 그러겠어.

그런 눈초리 속에서, 고집을 피워 낳은 늦둥이 셋째만큼은 첫째처럼 키가 크기를 바랐을 것이다. 자기 닮아서 애가 키가 안 큰다는 무례한 말들을 듣고 싶지 않으셨을 것이다. 이혼 후엔 더 그랬으리라. 아들이 아비 없이 자라서 운동도 못하고 키도 작다는 소리를 들을까 걱정하셨겠지. 그러나 일찌감치 운동과 담을 쌓은 데다가 밤 늦게까지 책 읽고 공상하느라 새벽을 훌쩍 넘겨서야 잠이 드는 카페인 중독자의 삶을 산 내가 남들만큼 키가 자랄 리 없었다. 내 키는 중학교 3학년 이후 더 이상 자라지 않았고, 어머니는 안타까운 표정으로 입버릇처럼 말했다. 네가 여기서 10 cm는 더 컸으면 어디 가서 나 닮아서 키가 작단 이야기를 안 들었을 텐데. 딱히 작은 키를 수치라 생각해본 적 없던 나는, 어느 덧 어머니의 강박에 전염되어 키높이 구두를 찾아 신는 사람이 되었다.

지금의 직업이 생업이 된 이후 내 체중은 더 빠르게 불었다. 하루에 8시간 이상 TV를 모니터링하고, 그만큼의 시간을 할애해 자료조사를 하고 글을 써야 하는 삶을 10년 넘게 살았으니 당연한 결과일 게다. 체중이 불 때마다 내 몸에 대해 걱정하고 우려하는 목소리는 그와 비례해서 늘어났고, 그럴수록 나는 점점 더 내 몸을 긍정하기 어려웠다. 네가 살을 빼야 할텐데, 그래 가지고 연애는 하겠니, 외모 관리도 사회생활의 일부다, 네가 조금만 더 컸다면 어땠을까… 이런 말을 하는 사람들 중 누구도 그게 무례라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 다 너 생각해서 하는 말이야. 너를 안 아꼈으면 굳이 이런 말을 했겠니. 사람들이 애정을 빙자해 심어준 수치는 내 안 깊은 곳에 뿌리를 내리고 번성했다. 스물 두 살 이후 단 하루도 연애를 쉬어 본 적이 없지만, 언제나 내 몸을 사랑해주는 사람이 있음에도 좀처럼 스스로 긍정할 수 없었다. 애인이니까 그렇게 말해주는 거겠지. 눈에 콩깍지가 씌어서 예쁘다고 말해주는 걸게야. 그렇지 않고서야 왜 이런 몸을 좋아하겠어.

난 지금도 거울 속의 살덩이가 낯설다. 피로로 처진 눈 밑 지방이 징그럽고, 갑상선 수술 이후 온전히 회복이 안 되어 한 쪽만 부자연스레 부어오른 볼살과 목이 끔찍하다. 이중턱과 목의 주름이 부끄럽고, 희미한 눈썹과 처진 눈꼬리가 창피하다. 발달이 안 된 흉근과, 피하지방과 내장지방으로 뭉쳐 더 이상 외투로도 커버가 안 되는 배가 혐오스럽다. 한번도 예쁘게 곧아본 적 없는 오다리가 밉고, 그 몸이 어정쩡하게 서 있는 자세가 말로 다 못 할 만큼 짜증난다.

그래도 나는 운이 좋았다. 나는 남자로 태어났고, 덕분에 “예쁘게 꾸며야 취업도 하고 좋은 사람을 만날 수 있다” 같은 말을 들으며 자라진 않았다. 방학을 맞이해 성형수술을 하자는 제안을 받지도 않았고, 너도 이제 성인인데 좀 꾸미고 다니라는 식의 핀잔을 듣지도 않았다. 나는 여전히 내 몸에 대한 말 못할 수치심을 가지고 있지만, 적어도 그 부끄러운 몸 때문에 내 재능을 부정당할 것이라는 협박을 당하지는 않았던 것이다. 매일 메이크업을 하고 나가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이, 이 미친 외모지상주의 공화국에서 이 얼굴과 이 몸으로도 꾸준히 방송출연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 남자로서 내가 지니고 태어난 기득권을 증명한다.


2.

작년 가을쯤이었다. 친한 후배와 이야기를 나누던 중, 후배가 새로 기획 중이라는 팟캐스트 이야기를 듣게 됐다. 후배는 취재 현장에서 만난 한 방송국 PD와 함께, 자신의 몸에 대해 진솔하게 고백한 페미니스트 록산 게이의 저서 <헝거>를 매개체 삼은 팟캐스트를 만들 생각을 하고 있노라 말했다. 오늘의 대한민국을 사는 여든 여덟 명의 여성이, <헝거>의 여든 여덟 챕터에서 각자가 마음에 와 닿은 문장이나 문단을 골라 낭독하고는, 그 뒤에 자기 자신의 고백을 덧붙이는 팟캐스트.

듣자 마자 나는 탄성을 질렀다. 지금 이 순간 너무 필요한 방송이란 생각을 했기 때문이다. 남자인 나조차도 내 자신의 육체를 긍정하지 못해 일생을 고통 속에 사는데, 하물며 여자는 어떨까. 나는 내 안에 깊게 박힌 내 몸을 향한 혐오를 생각했다. 그리고 나보다 더 오래, 더 집요하게, 더 비열하게, 자신의 몸을 혐오할 것을 강요받았을 여자들을 생각했다. 그들이 모두 입을 열어 자신의 몸에 대한 진실을 고백한다면, 세상이 심어준 바디 이미지에 휘둘리지 않겠다고 선언한다면, 그렇게 서로가 서로에게 스스로 당당하게 여겨도 된다는 오케이 사인이 되어준다면 어떨까. 여성들이 제 몸을 긍정하고 아끼고 사랑하게 된다면, 나처럼 보잘것 없는 몸뚱아리를 지닌 남성도 조금은 덩달아 응원 받는 기분이 들 것 같았다. 나는 후배에게 말했다. 지영아, 그거 꼭 만들어. 내가 도움이 될 수 있는 일이 있으면 도울게. 나는 그렇게, <오마이뉴스> 유지영 기자와 CBS 박선영 PD가 함께 만드는 CBS 팟캐스트 <말하는 몸>이 탄생하는 순간을 훔쳐보는 영광을 누렸다.


CBS 팟캐스트 '말하는 몸' 로고 이미지



그리고 그렇게 지켜본 <말하는 몸>의 행보는 눈이 부셨다. <말하는 몸> 안에서는 장애여성과 아나운서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활동가와 영화배우가, 기분부전장애를 앓고 있는 사람과 심각한 거식증에 시달렸던 사람이 각자의 이야기를 위계 없이 고백했다. 탈코르셋 선언을 한 이후 자신에게 쏟아지는 세상의 비난과 공격을 고백하는 이가 있는가 하면, 자신의 취향대로 화려하게 꾸미고 길을 나설 때 자신을 바라보는 세상의 시선에 대해 이야기하는 이가 있었다. 이 글을 쓰는 지금까지 총 22회의 방송이 업로드 되었고, 스물 다섯 명의 여성이 자신의 몸과 세상에 대해 입을 열었다. 나는 방송을 들을 때마다 기득권자로서 반성하고, 내 몸을 긍정하지 못하는 사람으로서 공감하고 위로를 받으며, 이 눈부신 방송을 만드는 이들을 친구라 부를 수 있는 사람으로서 자긍을 느낀다.

본업이 있는 사람들이 얼마 안 되는 여가시간을 쪼개고 또 쪼개어 만드는 방송인 줄 알기에, 나는 언제나 만드는 사람들의 과로를 걱정한다. 물론 걱정하는 사람치곤 도움이 된 일이 크지 않다. 팟캐스트에 사용할 로고와 썸네일을 만들어주고, 아주 가끔씩 그들의 브레인스토밍에 소소한 아이디어를 얹고, <말하는 몸>을 소개하는 기사가 나오면 SNS에서 조용히 RT를 누르는 게 고작이다. 마음 같아서는 더 많은 것을 돕고 싶지만, 혹시나 나 때문에 ‘여성들이 만드는 여성에 대한 이야기’라는 방송의 정체성이 깨지면 어쩌나 하는 생각에 늘 한 발짝 뒤로 물러서게 된다.

그런데 정작 그 과로의 강행군을 걷는 이들은 지금이 행복하다고 말한다. <오마이뉴스> 유지영 기자가 자신의 SNS에 적은 글을 인용한다.

“<말하는 몸> 녹음을 준비하는 선영님과 나의 일상. 이제 <헝거> 책은 거의 너덜너덜해져간다. 그만큼 녹음도 익숙해져야 하는데 그렇지 않다. 매번 다른 목소리를 마주하고는 귀가해 침대에 누워 꼼짝하지 않는다. 말에도 무게가 있다는 걸 믿는다. 무거운 말을 들은 날에는 도무지 침대에서 떨어질 줄을 모른다.
하루는 녹음을 네 개씩 몰아 하고 에너지를 다 쏟아버리고는 돌아가는 차 안에서 거의 드러누워 동거인에게 말했다. “평생을 오늘처럼 살고 싶다”고. 우리들의 생애 아주 중요한 순간들을, 어떤 분기점을 서로 이야기하고, 삶을 살아가는 이유를 말하고 좋은 책에 대해 감상을 나누고, 몰랐던 사실을 알고 평생 그렇게 살고 싶다고, 그렇게 말한다.”

모두가 느끼고 있지만 한번도 소리 내어 공유해 본 적 없는 감정들, 그것을 각자의 언어로 이야기하고 공유하는 것만으로도 세상은 훨씬 더 안전한 곳이 된다. 이런 감정을 느낀 게 나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 그 사실을 소리 내어 세상에 이야기하는 게 하나도 부끄러운 일이 아니라는 사실을 확인하는 순간 우리는 그만큼 자유로워지기 때문이다. <말하는 몸>을 만들고 있는 이들은 지금 그 일을 하고 있고, 그래서 고통과 환희를 동시에 느끼고 있는 것이리라.


3.

인터뷰를 하고 방송을 만드느라 고단할 나의 친구들을 위해 내가 더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이 방송의 존재를 조금이라도 더 널리 알리고 사람들에게 추천하는 것이리라. 이 글은 오로지 그 이유 하나를 위해 쓰여졌다. 이 길고 지루한 글이, 앞으로 남은 예순 여섯 번의 방송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수 있다면 영광일 것이다.

나는 더 많은 여성들이 이 방송을 들었으면 좋겠다. 자신의 이야기를 자신의 언어로 고백하는 걸 들으며, 그 누구도 혼자가 아니고 나와 비슷한 고민을 가진 채 하루하루 눈에 보이지 않는 싸움을 살아가는 이들이 많다는 사실을 상기하며 위로를 받았으면 좋겠다. 그 많은 청취자 중 자신의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고 결심한 이들이 나온다면 더더욱 좋을 것이다. 그렇게 오랜 부정 끝에 마침내 자신을 긍정하기로 마음 먹은 이들이 손에 손을 잡고 연대한다면, 세상은 지금보다 더 안전하고 자유로운 곳이 될 것이다.

나는 여성들만큼이나 이성애자 남성들도 이 방송을 함께 들었으면 좋겠다.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나의 동료 시민들이 일상적으로 느끼는 불안과 공포, 자기혐오와 사회로부터의 압박이 어떤 것인지 함께 체감했으면 좋겠다. 육체에 대한 품평과 대상화로부터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기득권자로서의 자신과, 그럼에도 외모지상주의 사회의 틀에서 결코 자유롭지 못한 피해자로서의 자신을 모두 되돌아봤으면 좋겠다. 나 자신은 얼마나 가해자였으며 얼마나 피해자인가를 함께 생각해보면, 우리는 서로가 서로를 미워하는 악순환을 끊어낼 힌트를 얻게 될지도 모른다.

CBS 팟캐스트 <말하는 몸>은 팟빵, 애플 팟캐스트, 네이버 오디오클립을 통해서 들을 수 있다. 방송을 만드는 두 제작자들의 제작후기와 방송 전문은 <말하는 몸> 네이버 포스트에 순차적으로 연재된다.

팟빵: http://www.podbbang.com/ch/1769459
애플 팟캐스트: https://itunes.apple.com/us/podcast//id1446849562
네이버 오디오클립: https://audioclip.naver.com/channels/1396
네이버 포스트: https://post.naver.com/my.nhn?memberNo=4521896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