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에야 매주 토요일 광화문 캠핑을 뛰고 있다만, 원래 나는 그렇게까지 집회를 많이 다니는 사람은 아니다. 나야 주로 역할이라는 게 집회 나가는 지인들에게 이런 이야기 하는 역할이었지. "아무도 다치지 마라." 아무도 다치지 말라고 해놓고선 정작 내가 나간 시위에선 무투라도 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이야기를 꺼낸 건 역시 조바심 때문이 컸다. '비폭력'이라는 프레임 안에 갇히느라 애써 '우리는 아무 해가 되지 않는다'라는 걸 열심히 강조하는 모습이 갑갑했기 때문이다. 물론 통계적으로는 평화시위가 그 효과가 더 크다는 걸 알고 있지만, 지난 2008년 촛불은 과연 어떤 생산적인 결과를 낳았는지 생각해보면 그 통계에 의문이 든다.

하지만 엊그제 의경 버스에 붙은 스티커를 떼준 시민들 이야기를 듣고 나니 내가 무투 운운했던 게 단순히 조바심 때문'만'은 아니었단 걸, 그런 투쟁을 할 수밖에 없는 처지에 처한 이들이 고립될 것이 두려워서도 있었단 걸 깨닫게 되었다. 심지어 스티커 붙이기는 이렇다 할 폭력도 아니었다. 국가 폭력의 도구를 꽃으로 뒤덮어 그 의미를 전복시켜 보자는 평화로운 퍼포먼스에 가까웠다. 정현석 작가님의 표현을 슬그머니 베끼자면, 스티커를 떼어내야 할 의경들도 안쓰럽겠으나 어디 한 군데 제 억울함과 수치심을 토로할 곳이 없어 닭장차에 스티커라도 붙이러 꾸역꾸역 서울까지 올라온 집회 참가자들은 안쓰럽지 않은가?

엊그제 피켓을 들고 청계광장에 서 있던 한시간 조금 넘는 시간 동안, 내게 다가와 말을 걸고 악수를 건네는 이들은 죄다 50대 이상 어르신들이었다. 어떤 중년 남성분은 핸드폰으로 피켓 사진을 찍고 싶었는데 그게 잘 되지 않아 10분 넘게 애를 먹다가 가셨고, 어떤 중년 여성분은 나를 붙잡고 10분 넘게 자신이 왜 광장에 나왔는지를 억울한 표정으로 토로하셨다. 섣부른 추측이겠으나, 내 눈엔 그 분이 SNS를 통해 자신의 뜻을 세상에 토해내는 데 익숙치 않은 분으로 보였다. 그렇지 않고서야 생전 처음 보는 청년을 붙잡고 시시콜콜한 이야기까지 끄집어내가며 목소리를 높일 리는 없지 않지 않았을까.

광장엔 그런 사람들이 한가득이었다. 경남 거창에서 하루 일당 25만원을 공치고 올라왔다며 "제발 이 싸움이 끝나고 나면 우리도 좀 사람처럼 살아보자. 내 새끼도 만져보고 손주 새끼도 만져보고, 서로 사랑하면서 좀 행복하게 살아보자."라고 울부짖던 트럼펫 아저씨, 전북 남원에서 올라왔다며 대체 언제까지 대통령을 참아야 하는 거냐고 울분을 토하던 아저씨. 세상 살이에 순응하며 꾸역꾸역 참고 살던 중년과 노년의 어르신들이, 울컥 하는 마음으로 광장을 채우고 그도 모자라 거리로 거리로 흘렀다.

이런 이들이 겁먹지 않도록 시위는 되도록 턱이 낮아야 한다는 말에는 동의한다. 광장은 더 다양한 사람을 환영할 수 있어야 하니까. 유모차를 끌고 나오는 젊은 부부들과 처음 집회에 나와보는 어르신 분들도 환영해야 하니까. 하지만 어디 가서 말할 곳도 없는 이들이 쓴 격문, 이런 이들이 붙인 스티커, 이런 이들이 저지르는 사소한 경범죄 - 이를테면 고성방가랄지 - 따위를 말끔히 치우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인가에 대해서는, 자꾸만 어디 가서 말할 구석이 없어서 생면부지의 나를 붙잡고 10분씩이나 속에 있던 천불을 토해내던 아주머니 생각이 나서 뭐라 긍정적으로 말을 못하겠다.

성숙하고 평화로운 촛불집회는, 그렇게 평화롭게 집회를 해도 언론이 대서특필해줄 만큼 사람이 모이고 경찰이 알아서 수그리는 환경이기에 가능하다. 이번에야 광장이 열렸으니, 말할 창구를 찾지 못하던 이들이 그렇게 흘러 나왔고 광장은 그들을 환영했다. 하지만 광장이 닫혀있던 때, 그렇게 제 말을 제대로 실어 날라 줄 창구를 찾지 못했던 이들은 극단적인 방법을 택할 수밖에 없었다. 누군가는 차벽을 넘었을 것이고 누군가는 굴뚝에 올랐으며 누군가는 망루를 지켰다. 그들은 프락치도 분탕종자도 아니었다. 그저 평범한 사람이었을 뿐이다. 이 싸움이 끝나고 나면 집에 가서 내 새끼도 만져보고 손주 새끼도 만져보고, 아이가 사달라고 했던 힐리스 운동화도 사주고 싶었던, 평범한 사람.

폭력/비폭력은 개별 투쟁이 처한 상황에 따라 선택 가능한 전술전략이지, 폭력이 미성숙이고 비폭력이 성숙이라고 잘라 말할 수 없는 것이다. '성숙하고 평화로운' 시위의 프레임이 보편의 지위를 득하고, 그럴 수 없는 상황을 어떻게든 뚫고 나가려는 이들에게까지 그 프레임이 씌워지는 순간, 검찰은 우리의 집회를 다른 이에게 죄를 묻는 근거로 사용한다. 오늘 검찰은 한상균 민주노총 위원장 재판 2심에서 징역 8년을 구형했다고 한다. 그 근거가 "최근의 평화적인 집회와 비교해보면 작년 총궐기집회는 폭력적이었고, 따라서 더욱 엄히 다뤄 폭력을 뿌리 뽑아야 한다"는 것이었단다. "피고인에겐 5년 선고도 지나치게 가볍다"며, 폭력집회에 대한 엄벌의 결과로 평화로운 집회가 자리잡힌 것이니 "살수차는 적법"이라고 했단다. 물론 이건 프레임을 악용하는 검찰의 잘못이지, 선한 광장의 잘못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악용하지 말란다고 안 할 검찰이었으면 애초에 이랬을 리 없다.

우리는 보다 더 담대해 질 필요가 있다. 거푸 이야기하지만 무조건 무력을 사용하는 폭력투쟁에 나서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나도 누가 다치는 거 딱 싫어한다. 하다못해 집회 다녀오느라 목이 쉬는 것도 보고 있기 딱해 죽을 맛인 걸. 하지만 참을 수 없는 분노와 수치심에 길거리에 나와놓고서는, 쓰레기를 줍고 질서를 지키는 모범시민이 되지 않으면 불안해하는 건 좀 이상하지 않나? 트집 잡히지 않는 투쟁을 해도 이길 수 있을 것 같은 판이 '성숙'한 판으로 추인되는 순간, 트집 잡힐 걸 감수해야 하는 투쟁에 처한 이들은 고립되고 만다. 우리가 선택한 투쟁의 방식에 우리 스스로 갇히면 안 되지 않나. 평화로운 집회를 선호하는 이들을 겁에 질리게 만들고 멀리 쫓아내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시민불복종의 정신, 당신의 지배는 부당하니 난 당신에게 순응하지 않겠다는 정신을 함께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해 보자는 이야기다. 그래서 나중에 보다 파열음을 크게 내는 전략을 택한 이들이 등장해도, 왜 평화롭지 않은 방법을 택했느냐고 손가락질 하는 대신 당신의 사정은 그랬구나 하는 공감대 안에서 연대할 수 있도록 말이다.

100만이 모인 집회다. 불복종하겠다는 의사를 밝힐 보다 더 다양한 상상력, 보다 더 도발적인 시도가 필요하다. 참고로 - 앞에서 좋지 않았던 예로 들어놓고선 뒤에 와서 좋았던 예로 들자니 좀 이상하긴 하지만 - 2008년 촛불이 '행사화'되기 전인 초반에는 행진 방향이 어디로 가는지 대체 감을 잡을 수 없고 이렇다 할 '본대'가 없이 서울 전역을 휘젓고 다녀서 경찰들이 당황했던 바 있다. 우리에겐 새로운 전략, 새로운 방법, 새로운 행선지, 새로운 노래들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 무엇보다 먼저, 불복종해도 괜찮다는 인식이 필요하다.

청계천에서 한 시간 가량 진행한 일인시위. 사진 by 유지영청계천에서 한 시간 가량 진행한 일인시위. 사진 by 유지영

일인시위에 사용했던 피켓. 사진 by 유지영일인시위에 사용했던 피켓. 사진 by 유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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