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고 사는 것이 해결이 안 될지도 모른다는 공포와, 그 경쟁에서 탈락하면 모든 게 끝이라는 판단이 모든 것을 흐리게 만든다. 그게 해결이 안 되면 대학을 서열화하고 실질적으로 지배하려는 삼성의 총장 추천 전형도, 학교가 가난하니 학생들이 희생하라는 재단의 강짜도, 분란 일으키지 말고 얌전히 숨죽이고 있으란 세상의 핀잔도 전면으로 맞서 싸우기 어려워진다. 모두가 영웅은 아니고, 용기 내어 일어나기엔 소시민들은 잃을 게 너무 많다. 그 질서를 따라 한 평생을 살아온 이들 입장에선 왜 저항해야 하는지도 와닿지 않을 거고.

멋지게 '그것만이 인생이 아니며, 아무리 깊은 좌절을 겪은 후라도 어떻게든 삶은 계속된다'고 말하며 좌절을 맞서고 제 삶의 방식을 고수하는 방법도 있겠지. 그러나 시스템에서 탈락해도 다시 일어설 수 있는 최소한의 사회안전망이 부실한 상태에서는, 좌절 앞에서 겁을 먹지 않고 자신이 살던 방식을 고수하는 삶의 태도 같은 건 모두 개인이 품성으로 책임져야 하는 것이 되어 버린다.

깊은 좌절을 겪은 후에도 굶어죽을 걱정 같은 건 안 해도 되고, 강자에게 굴종하느라 제 뜻을 꺾지 않아도 자신과 가족이 다치지 않을 거란 확신이 드는 게 당연한 세상을 만들어야 한다. 용기있게 일어서는 영웅은 그런 세상을 만들기 위한 영감은 될 수 있겠지만, 평범한 소시민들도 그렇게 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들려면 결국 영웅에게 기대는 대신 시스템을 바꾸고 사람들의 인식을 바꿔야 한다.

물론 복지 확충이나 지역 운동, 시민 운동엔 모두 저마다의 약점이 있다. 우린 최소한의 보편적 복지에도 제대로 된 국민적 합의를 보지 못했다. 한 지역 안에 사는 군소자영업자와 아르바이트 노동자가 같은 이해관계를 공유하지 않으니, 지역 감정 없는 지역 풀뿌리 정치는 허상에 가까울지 모른다. 시민 운동은 딱 자신들이 다치지 않는 범위까지 전진할 뿐, 그 이상의 공격성이나 기동성을 가지고 투쟁하지 않는다. 우리에겐 그보다는 더 래디컬한 비전이 필요한 건지 모른다.

그럼에도 일단 최소한의 사회안전망, 복지 시스템 구축을 먼저 이야기하는 이유는... 그렇게 대세를 따르지 않아도, 소리 죽이고 있지 않아도 심각한 피해를 입지 않는다는 자신감이 우리 세대에겐 - 보편적으로 - 결여되어 있기 때문일 거다. 시스템에서 탈락하면 인간 쓰레기요 등골 브레이커가 될 거라는 공포를 12년 동안 학습 받으며 대학에 왔고, 그 공포 위에 스펙을 쌓아 경쟁해 기업이 원하는 인재상으로 인성까지 고쳐야 취업을 할 수 있다고 가르치는 대학 교육을 받았던 우리 세대는 늘 윽박지름 당하며 주눅 든 채 여기까지 왔다. 자연 상태에선 자기 자신에 대해 자부심이나 자존감을 가질 수 없었으니 명품이나 근육, 스펙이나 외모, 연봉 따위에 집착하면서, 콤플렉스를 동력으로 비틀비틀.

최소한의 안도감을 찾을 수 있다면, 그래서 조금 더 자신감을 가질 수 있다면, 어쩌면 그 지점에서 다시 시작할 수 있지 않을까. 그게 해결이 안 된 상태라면 재생산을 거쳐 세상에 나올 우리의 다음 세대도 우리처럼 볼품없이 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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